대장동 김만배와 언론사 기자들의 돈거래에 <한겨레> 간부도 포함된 것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실망을 드러내 왔다. 오랫동안 꾸준히 <한겨레>를 봐 온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겨레>의 기사 내용과 논조가 뭔가 이상하고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과연 이번 사건과 무관하겠나’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물론 검찰이 흘리고 특정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족벌언론 기자들이 더 심하지 않았을까? 왜 돈받은 검사들은 지워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는 해당 기자를 해고하고 대표이사와 편집국장이 물러나면서 신속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굼뜨게 대응하거나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다른 언론들에 비해서 훨씬 나은 것이다.
비록 <한겨레>의 논조가 실망스럽게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측면에서 족벌언론들에 비해서 나은 것도 사실이다. 노동 문제나 젠더 문제 등에서 여전히 <한겨레>는 소수자와 약자들 편에 서서 가장 높은 감수성을 보이고 있고, 주류 양당을 넘어선 더 급진적 목소리들을 가장 많이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한겨레>는 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는지 분명하게 평가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단지 몇 사람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을 넘어서서 더 중요한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며, 이것을 넘어설 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봐야할 것은 오늘날 많은 언론사들을 대형 건설사와 금융사들이 소유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그런 건설사와 금융사들은 언론을 이익 추구 수단이나 로비 창구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주류언론들의 논조와 편집방향들이 상층부 엘리트들의 정서와 관점을 반영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주류언론사의 데스크를 차지한 언론사 간부들이 스스로 사회 상층부 엘리트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나아가 KBS 홍사훈 기자는 “요즘 입사하는 기자들만 봐도 외고 출신, 특목고 출신, 강남 8학군 출신들이 상당수”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명문대 출신으로 언론고시를 패스한 기자들이 비슷한 경로와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 엘리트들과 맺고있는 관계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맥과 학맥을 통한 네트워크의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을 더욱 악화시키는 구조가 바로 출입처 제도와 ‘법조기자단’으로 대표되는 측면이다. 이것을 통해서 강남 8학군과 명문대를 거쳐서 ‘사법고시를 통과한 검사와 언론고시를 통과한 기자들의 네크워크’가 더 공고해진다. 검사와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어울려 골프를 치고 여기에 ‘취재원 관리’라며 ‘진보언론’ 기자들도 끼어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권력과 행동 방식은 유사성을 보인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통해서 힘을 과시하고 누군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면서 세상을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언론은 취재와 보도를 통해서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은 선택적 취재와 보도를 통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힘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두가지 결합될 때이다. 검찰과 언론이 손 잡고서 누군가는 덮어주고 누군가는 파헤칠 수 있다. 검찰이 수사 기소하지 않고 언론이 취재 보도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수 있다. 반면 검찰이 좌표를 찍고서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면 잘못이 없어도 누구든 무너질 수 있다.
이것이 단지 네트워크의 형성과 유착을 넘어서 비리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전 족벌언론사의 논설위원과 아나운서까지 연루된 것이 드러난 ‘가짜 수산업자’ 비리 때도 밝혀진 바 있다. ‘한겨레와 경향’은 애초에 이런 구조를 비판하며 그것에 도전했던 언론사였다. 하지만 이런 구조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은 ‘한겨레는 기자실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기자실을 폐지하라고 주장하지는 않았고, 결국 기자실의 일원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겨레와 경향’도 족벌언론들과 함께 검언유착 구조의 일부가 됐다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바로 ‘노무현의 비극’이 벌어졌을 때 였다.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문재인의 운명>)
물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태도에서 족벌언론들과 ‘한겨레와 경향’은 상반돼 있었다. 한 쪽은 오른쪽에서 반대라면 한 쪽은 왼쪽에서의 비판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찰과) 언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방향 속에서 그것을 건드린 정부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양쪽의 공격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이것은 ‘한명숙 사건’에서도 반복됐다. 그리고 ‘한명숙 사건’ 때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한겨레> 기자가 쓴 글은 의미심장하다. "한명숙 총리는 돈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뇌물 받은 정치인은 늘 그 사실을 부인한다. 검찰은 탄탄한 증인과 증거를 갖고 있다" 검찰의 편에서 받아쓰기를 하면서 한명숙 죽이기에 동참한 셈이다.
이 기자는 나중에 편집국 총괄을 거쳐서 정치팀장, 사회부장으로 계속 올라가 취재와 보도에 큰 영향을 끼쳤으니 이런 성향을 단지 개인적인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이러한 경향은 역설적이게도 2016년 촛불항쟁을 거치며 더 강화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기소하고, 취재보도하면서 검찰과 언론의 유착, 족벌언론과 ‘한겨레와 경향’의 협력은 뚜렷해졌다.
여기서 검찰과 언론 모두의 주목과 칭찬을 받았던 것이 바로 지금의 윤석열과 한동훈이다. 한동훈은 별명이 ‘편집국장’일 정도로 언론사와 기자들의 필요와 요구를 잘 파악하고 충족시켜줬다. 원래 ‘적폐’의 핵심이던 검찰은 화살을 피할뿐 아니라 ‘적폐청산의 주도자’가 됐다. ‘우리가 의제를 설정하며 세상을 움직인다’는 검찰과 주류언론의 자신감은 더 높아졌다.
검찰과 언론의 유착, 족벌언론들과 ‘한겨레와 경향’의 동조화 현상은 조국 장관과 윤미향 의원과 추미애 장관 등을 좌표찍고 공격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강화됐다. 검찰개혁이나 언론개혁을 막아서면서 ‘내로남불과 공정’을 프레임으로 정부를 공격하는데서 구분이 어려워졌다. 이런 현상은 ‘검찰 수사권 조정 법안’이나 언론중재법 등에 반대할 때도 계속 나타났다.
물론 이번에도 오른쪽의 족벌언론들과 왼쪽의 ‘한겨레와 경향’은 서로 상반된 곳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하고 있었다.(다만 얼마전 ‘한겨레와 경향’이 법사위 의장을 약속대로 국민의힘에 넘기라고 주장하거나, 이상민 해임안을 ‘협치를 해치는 민주당 강경파의 문제’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구분에조차 혼란이 생기고 있는 흔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언유착 구조의 표적이 주로 민주당쪽 인사들이었다는 것이 이것을 무시하고 외면해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정치구도와 진보정당이 아직 기득권 카르텔의 주요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하지도 못한 현실 때문이었다. 다만 노회찬 의원이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 그 짧은 과정에서도 검찰-언론의 공조는 존재했다.
그리고 이제 ‘대장동 사건’이 있다. <뉴스타파>는 ‘대장동 일당’이 기자들에게 돈을 주고 로비를 한 것은 ‘보험’의 성격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기사를) 돈으로 막았는데”(김만배)라고 나온다. 그래서 대장동 취재와 보도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만들어졌다. 대장동에 대한 최초 보도가 왜 지방의 이름도 모르던 신문사에서 시작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중심은 족벌언론들이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거액 연봉을 받던 대장동 화천대유 고문이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이고, 녹취록에서 남욱이 <조선일보> 기자와 긴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뉴스타파>는 ‘대장동 일당’의 가장 핵심적 로비 대상은 무엇보다 특수부 고위검사들이었다고 지적한다. 대장동 사건이 막상 불거진 이후에 몸통은 사라지고 엉뚱한 곳만 가리키는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가 이어진 이유다.
이 뿌리깊은 검언유착 구조에 <한겨레>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 충격을 주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 상황이다. <한겨레> 고위 간부는 해당 기자의 돈거래를 1년전부터 이미 알았던 것도 드러났다. 따라서 <한겨레>는 단지 해당 기자의 해고와 간부진의 사퇴로만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이런 일탈이 가능할 수 있었던 구조, 제도, 문화, 규범들에 대한 더 철저한 평가와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출입처 제도를 벗어나야 하고, 검언유착 구조가 낳은 피해자들의 시각으로 취재와 보도들을 재평가해야 한다. 족벌언론과 포털권력들이 주도하는 프레임에서 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솔직히 이번에 해당 기자의 해고와 일부 간부들의 사퇴 이후에도 <한겨레>를 포함한 대부분의 법조 기사들의 논조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번 파문은 검언유착 구조에서 검찰의 우위를 재확인하며 언론을 더 줄세운게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겨레>가 처음에 기대를 모으며 지지를 얻었던 것의 핵심을 돌아보자. 족벌언론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고, 검찰과 언론의 기득권에 맞서는 과감한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족벌언론과 포털권력의 온갖 기사들을 보고 분노한 많은 이들이 <한겨레>에도 실망하고 있다. 이것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찾아내서 그것을 벗어나는 데에 길이 있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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