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ㅡ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힘내세요! 마라톤은 30킬로부터 시작입니다”
‘하.. 그건 나도 압니다’ 그렇지 않아도 30킬로를 넘은 것은 알겠는데, 삼십 몇 킬로일까. 멀리 꺾어지는 도로에 희미하게 큰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고, 앞에 3자가 보이는데 뒷 글자는 가로수에 가렸습니다. 글자를 보기 위해서라도 지친 발을 한발 한발 뛰어갑니다. 36? 35, 34? 35일 것 같습니다.
조금씩 더 가까워 지는 표지판을 보아하니 뒤에 3자가 보입니다. 아직 33km, 아직도 9킬로가 남았다. 지치고, 조금이라도 속도를 높이면 다리에 쥐가 날 듯 말 듯 합니다.
구(區) 경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잠실대교 입니다. 12차선 중 반을 막아 두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데 1개 차선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6개차선 폭 25미터 길이 1,280미터 한강을 건너는 기분은 이 대회에 참여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기를 뛰는 건 동마(동아마라톤) 외에는 없으니까. 동마의 클라이맥스는 잠실대교 입니다.
42.195킬로를 뛰면서 드는 생각은 421가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진행 중인 소송 사건들을 하나 하나 생각하는 것만 해도 많은 비중입니다. 그리고 수임하지 못한 사건들과, 앞으로 어떤 사건을 해야 하나, 다음 노동법 칼럼은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운동과 몸에 관한 생각도 합니다. 왜 달리기를 하고 있나, 살은 언제쯤 빠지는게 완성될까, 나는 왜 뛰고 있나. 인간관계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389번째 생각 즈음에 가족과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이 시간에 서울에 오고 계십니다. 왠지 북 받혀 오르는 느낌에 눈물이 흐릅니다. 하염없이 슬픈것도 기쁜것도 아니고 복합적인 눈물입니다. 육체적인 아픔이 정신을 지배합니다. 37.5킬로 지점이었습니다.
수 년 만에 동호회에 나갔습니다. 백승환 @ssiktam 형은 그 사이에 오사카 마라톤에서 대기록(2시간53분44초)을 달성했습니다. “오랫만이네, 이번에 동마 나갈래? 배번이 남는데”, “대회가 2주 뒤인데요?”
하지만 인생에서 변곡점 필요했던 상황에서 마라톤 풀코스 만큼 드라마틱한 것도 없습니다. 풀코스를 뛴다고 했습니다. 2주 동안 매일 10km씩, 주말에는 20km를 뛰었습니다. 남들은 풀코스 준비를 마치고 휴식기인데, 나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2월부터 왠지 달리고 싶어서 매일(하루도 쉬지않고) 5-6킬로 뛴 것입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옵니다. 2월이 없었다면 동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동마는 5시간 넘으면 컷아웃 됩니다. 일반인에게 잔인한 대회. 어쨌든 완주 했습니다.
마라톤은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입니다만, 동기부여 하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더욱 훌륭합니다. 이번 대회의 고무적인 특징은 단 한번도 걷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runnershigh_kr 동호회에서 새벽부터 응원하고 피니시라인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도와준 덕분입니다.
덕분에 적어도 4시간10분동안 걷지는 않았습니다.
*제목은 #haruki의 책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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