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ㅣ 12/18 잡담: 슬픈 크리스마스의 추억 <The Twelve Days of Christmas>
1.
약 10년 전 나는 중국에서 대차게 망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모바일게임을 중국에서 퍼블리싱 하는 사업을 했는데 1,500만 다운로드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망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박의 지표를 받고도 망한 이유는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겠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니 말이다.
2.
힘들어 하고 불안해 하던 나에게 아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들 데리고 시골 친정에 가 있을테니 빨리 다시 자리 잡고 불러주세요. 단,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게..."
3.
첫째 딸 유정이의 학기를 마치고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우리 부부의 최대 고민은 둘째 딸 유민이의 유치원이었다. 상하이 구베이에 있는 고급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있었는데 유민이는 그 유치원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너무 좋아했다. 돈에 허덕이던 우리 부부는 그 유치원비가 정말 부담스러웠다.
4.
설상가상으로 유치원비를 내기도 힘든 형편이라는 것을 모르는 유치원측에서는 연말 크리스마스 행사에 엄마들이 애들을 위해 합창을 하는데 그 연습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집세 보증을 까 먹어 가면서 유치원을 연말까지 보내기로 했다.
5.
사정을 모르는 유민이는 그저 엄마와 수시로 유치원에 함께 오가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다른 엄마들은 가끔씩 연습에 빠졌지만 아내는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정말 열심히 유치원 합창 연습에 참여했다. 그렇게 이별준비를 한 것인지 혹은 그렇게라도 해야 여러가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후에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연습한 합창곡이 'The Twelve Days of Christmas'라는 캐롤이었다.
6.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던 날 유민이는 한껏 이쁜 옷을 꾸며 입고 유치원에 갔다. 산타 할아버지가 유민이에게 "정말 착한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예쁜 인형을 주었다. 선물을 받는 유민이는 대단히 기뻐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고,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을 대견하게 지켜 보았다.
비록 그 인형이 내가 유치원에 미리 보낸 것이고, 그 인형을 사기 위해 며칠을 제대로 된 밥을 사 먹지 않았지만 유민이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좋은 아이였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7.
On the first day of Christmas, my true love sent to me. A partridge in a pear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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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welfth day of Christmas, my true love sent to me
Twelve drummers drumming, Eleven pipers piping,
Ten lords a-leaping, Nine ladies dancing,
Eight maids a-milking, Seven swans a-swimming,
Six geese a-laying, Five golden rings,
Four calling birds, Three French hens,
Two turtle doves, And a partridge in a pear tree!
8.
아내는 하필 합창단 센터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연습한 합창곡을 부르고 있었고, 맬로디도 캐롭답게 유쾌했지만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슬픈 크리스마스 캐롤이었다.
마무리로 어머니 합창단과 아이들이 함께 '루돌프 사슴코'를 불렀는데 나는 몇 년 동안 아이들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9.
유민이에게 그 유치원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유치원에 가려는 아이를 우리는 보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왜 유치원에 못 가게 하냐"고 떼를 쓰던 유민이는 나중에는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만 하고 오면 안되냐?"고 울면서 애원했다.
아내는 슬픔을 억누르고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나의 무능이 그 순간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10.
가끔씩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때 혹은 내 자신이 나태해 진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그해 슬픈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고 <The Twelve Days of Christmas>를 다시 듣곤 한다. 그러면 정말로 정신이 번쩍 든다.
11.
다행히 나는 가족들을 반 년 만에 다시 상하이로 불러올 수 있었다.
중국회사에 취업을 해서 비록 급여는 적게 받았지만 그 시절 무단복제 해서 사용하던 한국게임 IP를 중국게임 역사상 최초로 정식 라이언스 계약을 맺도록 했고 그것이 한국과 중국 게임사 양쪽 모두 대박을 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시 양사를 조율해서 맺은 계약은 지금 업계 표준이 되었고 이후 중국게임업계는 무단으로 한국게임IP 복제를 하는 일이 대폭 줄어 들었다.
12.
내 사업으로 했다면 최소 수백억 원의 커미션을 받았겠지만 당시 나는 중국회사의 직원(고문)의 신분이었고, 그래서 별도의 커미션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중국 회사 경영진들이 나에게 약간의 보너스를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가족을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 레퍼런스는 이후에 내 이름을 다시 업계에서 찾도록 만들었고 내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때문에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13.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내 경우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내 자신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야 그저 삶에 대한 생존본능이었지만 나이를 먹고 힘든 일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가족이다.
그래서 아내와 두 딸들에게 늘 고맙게 생각한다.
14.
사실 지금도 내 상황이 그다지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한번도 꿈꾸지 않았던 정의와 진실을 위해 정권 그것도 검찰공화국에 맞서 싸우는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협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15.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오늘 모처럼 <The Twelve Days of Christmas>를 듣는 중이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내 자신도 열심히 지키겠다고 한번 더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들어도 여전히 슬픈 캐롤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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