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할 증시 움직임
시대가 어떻게 변했는가 하면요.
1986년은 사람이 거래했고, 컴퓨터가 부족해서 칠판에 익일이 되야 시세를 기록했는데, 분필을 여러개 끼워서 돌리는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 있었지요.
1995년은 거의 전산이 보급됐고, 객장 전광판 시스템이었고, 1989년부터 활성화된 동호회가 1995년쯤 증권쪽도 활발했었습니다.
1995년은 본격적으로 한국증시개방 원년이기도 한데, 확인은 안되지만 검은머리 외국인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1주 이내에 외국인 한도가 찼었고,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외환이 많았습니다. 미국의 요청에 의한 대미투자가 본격 실시된 해이기도 합니다.
1998년 HTS가 보급이 보편화되었고, 이때 인터넷 브라우저 시스템이 활성화됐습니다. 이때 증권사랑 동호회 일부 비주류가 만든게 팍스넷이었지요.
1997년 ~ 1999년에 파생상품이 본격 도입됐고, 이때 증시 거물이 대우의 김우중회장, 현대의 정주영회장, 대신의 양회장, 미래에셋의 박현주회장, KR선물의 윤강로 회장, 대신증권 스캘퍼 장기철 대리, 선물옵션의 일반 투자자 류상협
2000년은 코스닥 상장붐이었고, 그 결과는 처참했지요. 강남 룸싸롱은 코스닥이 먹여살린다고 했고, 싸이의 「지금은 강남시대」배경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말춤은 1987 ~ 1989년의 작자 미상의 운동권 춤이구요.
2005년에 자본시장에 관한 통합법률의 시행과 금융업 변화, 변액보험 판매 등.
그 후는 제가 좀 관조적이라서 잘 모르지만, 시장이 상당히 나빠서 지수주 중심과 우선주 재평가 시장이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2008년부터는 미국시장이 워낙 좋아서 국내시장에 관심이 없었구요. 미국증시 지수가 10배쯤 갈거라고 봤었지요. 이게 2차 나스닥 붐.
2015년에 시장은 펀드활황이었고, 최후 붐이 2016년 이른바 「화류계장세」☜ 제가 주관적 명명. 솔찍히 그럴줄 알았지요.
2017년 정도부터 공개펀드런, 동시에 전문사모펀드시대의 개막
그리고 이제 2019년이네요. 솔찍한 제 유감을 얘기하자면, 한국시장에도 고스톱이 오랜 광풍인데, 투자 잘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당연히 국제적 수준이지요.
이제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본운영을 잘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시각들이 너무 한국 전문가들을 무시하는거 같습니다. 박사로 시장서 절대로 못이깁니다.
늦게나마 전문사모펀드가 활황인건 참으로 다행하게 생각 중이며, 미래의 한국 핵심은 다름아닌 지주회사(홀딩스)라고 생각하고 있고, 어마어마하게 쌉니다. 이렇게 된 이유도 알고 있지만 설득하면 제가 주식을 못사니까 안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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